“보수의 자기개혁과 북한인권이 내 화두
반공보수, 시장보수와 또 다른 접근하겠다"
-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과의 대화
<대담 조주현 서울대 강사>
“저는 스스로를 계속 혁신하고 있습니다. 그걸 가리켜 누가 변절이라고 곡해한다면, 저는 매일매일 스스로를 변절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말하겠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발전이자 성숙이 아닐까요. 옛 (민주화) 동지였던 임수경 의원에게도 ‘너도 변절해야 한다’고 이번 기회에 말해주고 싶습니다.”
개원조차 진통을 겪고 있는 19대 국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의 한 명은 단연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45)이다. 최근 변절자 발언 사태 때문만은 아니다. 이념적으로 좌와 우를 모두 겪은 이력, 이후 북한 인권에 헌신까지 포함해 그는 가장 많은 콘텐츠를 가진 정치인의 한 명이다. 젊은 재목(材木)에게 쏠리는 사회적 관심은 당연한데, 그는 당당하고 솔직했다. “옛날의 동지들과 과거는 함께 했지만, 미래까지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국내 종북세력과 민주당은 북한 인권운동을 줄곧 외면하거나 가로막아 왔고, 새누리당은 이를 지원해 왔기 때문입니다. 남한이 민주화되었으니, 이제는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으로 일관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까지 북한의 3대 세습과 인권 참상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세력들이 변절자들입니다.”
그는 국회의원 당선 직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하여 “변화와 감동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변화와 감동, 누구나 쉽게 말한 뒤 이내 바로 잊곤 하지만 하태경에게만은 신뢰감이 갔다. 지난 삶 자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이다. 서울대 물리학과 입학(86학번), NL계 학생운동 하다가 2년간 수형 생활, 이후 문익환 목사를 도와 통일운동 진력, 탈북자들을 접한 후 다시 북한인권운동가로 변신, 2012년 제19대 새누리당 국회의원(부산 해운대기장을) 당선…. 단절과 비약의 대한민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인터뷰 내내 학생 운동과 시민운동 등 오랜 활동과 성찰에서 나오는 진정성과 차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쓴 책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글통, 2011년) <만화 김정은>(시대정신, 2011년)등에도 새삼 관심이 쏠렸다. 입주한 지 며칠 안 된 의원회관에서 이뤄진 이번 대담은 조주현 서울대 강사(정치철학)가 진행했다.
“민주주의 요구와 인권 압박이 저들의 조기붕괴를 막습니다”
- 오랫동안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을 해왔습니다. 이제 국회의원으로서 현실 정치에 첫발을 들여 놓으셨는데,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덧붙여서 하 의원의 큰 비전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을 할 때에는 문제 제기자, 즉 경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문제 해결사로서의 비중이 커진 것 같습니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국민들의 총체적 의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으면 합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시혜(top down)적인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국민 한 사람이 문제 해결 과정의 주체로서 참여한다는 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민들의 의식이 함께 성장할 때, 대한민국의 수준이 한 단계 향상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 의정 활동의 방향을 북한문제 해결과 보수의 자기 혁신 두 가지로 잡으셨습니다. 북한문제 해결을 위해서 그동안 ‘열린북한방송’을 운영하고 ‘북한인권법’을 발의하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북한문제 해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실 생각이신지요?
“핵, 식량 등 북한문제 해결에 있어서 정부는 그동안 외교적으로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식량지원도 그렇고, 핵협상 시작한 이래로 18년이 지났는데 결과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오히려 악화된 측면이 있지요.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요. 이제는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전 세계가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악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민주주의는 정치 개혁의 문제이고, 인권은 사회 개혁의 문제입니다. 저는 북한 사회의 붕괴를 바라지 않습니다. 한 사회가 붕괴되는 가장 큰 원인은 위기 시 대체세력이 없을 때입니다. 북한 사회가 붕괴되지 않으려면 경쟁하는 정치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원적인 대체 세력이 존재하도록 외부에서 압박하는 것이, 북한 사회의 붕괴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당제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라면, 점진적으로 정년제부터 받아들이도록 요구할 수 있습니다. 종신 집권이 독재의 뿌리니까요.”(정년제 요구는 북한사회에 밝은 그만이 내놓을 수 있는 아이디어인데, 다른 방송·신문 인터뷰에서도 반복했던 말이다. 군과 당을 채운 70대 원로들의 문제는 북한의 보수화를 만드는 요인의 하나이다. “과연 그런 요구가 통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나이 많은 원로의 존재는 젊은 김정은에게도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 최근 탈북자의 증언과 통계를 보더라도, ‘열린북한방송’을 비롯 남한 방송의 청취자가 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 의원의 대안이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 보다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이 있을까요.
“방법은 핵폐기하면 보상해주듯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개선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정치범수용소를 해체하면, 그곳 부지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데 우리 기업이 지원해주는 것입니다. 보상으로 인터넷 광케이블을 깔아줄 수도 있구요. 통일이 되면 언젠가 꼭 필요한 인프라 아니겠습니까. 필요하다면 지분을 가지고 참여할 수도 있겠지요.”
“공공성 회복한 시민들의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 펼치겠다.”
-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하 의원의 대안이 단순한 레토릭(rhetoric)이 아니라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의 내부혁신 문제는 어떻습니까. 어쩌면 북한문제 해결보다 더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집권당 의원은 ‘거수기’, 야당 의원은 ‘떼쓰기’ 역할로 전락한 상황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초선의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저는 1세대 보수를 ‘반공(안보) 보수’, 2세대 보수를 ‘시장 보수’라고 부릅니다. 새누리당에 들어와보니 당원들 대부분이 50대 중반의 어르신들이더군요. 나라 걱정은 많이 하시는데,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소통하는 민주주의 문화는 충분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다수 당원들의 이메일이 없고, 당원들 교육도 거의 없으며, 선거때만 반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심지어 당의 결정을 당 내부에서가 아니라 언론을 보고 알 때가 많습니다. 인터넷 정보화 시대인데,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위한 온라인 소통의 공간마저 없습니다. 권위주의적인 1세대 보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내부 소통과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보수의 자기혁신입니다.
2세대 보수인 ‘시장 보수’의 문제는 지나치게 이권과 사익에 치우쳐있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 시스템이 지역구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재선을 위해서는 지역구 민원 해결이 우선입니다. 그러다보니 ‘한미 FTA’나 ‘북한인권법’ 같은 국가적 아젠다는 소홀히 하고, 건설교통을 담당하는 국토해양부가 인기입니다. 각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국가적 현안에 대한 여론을 모으고 알리는 데 애쓰지 못하니 국민들 뜻이 제대로 모이질 않습니다.”
- 그렇다면 하 의원은 3세대 보수입니까.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3세대 보수는 ‘공동체 풀뿌리 보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공공 참여형 보수인데요. 기존의 탑 다운(top down) 방식이 아니라 바텀 업(bottom up) 방식을 지향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지만, 신자유주의가 한국화되어 새로운 부패비리 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제대로된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도덕성 수준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되어온 보수의 자유주의 ‘뉴라이트(new right)’ 운동도 이러한 관점에서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경제는 좋지만, 시장 사회는 곤란합니다. 공공성을 회복한 건강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큰 사회(Big Society)’로 가야합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큰 정부(Big Government)론이나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작은 정부(Small Goverment)론에는 개인과 국가만 있지, 사회가 없습니다."
- 기존의 1세대 보수(안보), 2세대 보수(시장)가 정치경제 섹터를 중시하는 이른바 ‘하드파워(Hard Power)’형 보수였다면, 3세대 보수는 사회문화 영역을 강조하는 ‘소프트파워(Soft Power)’형 보수이어야 한다는 하의원님의 주장,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임을 감안할 때, 자칫 공허한 주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시민 사회가 지나치게 이념 지향형이고, 생활과 동떨어진 이슈를 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지방의 풀뿌리 시민단체(NGO)가 취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 지역구인 기장만 하더라도 1년 예산이 4300억 원 정도 되는데, 그걸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없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돈이 들어가는 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나 신용협동조합 일은 주민들의 것이라기보다 ‘그들만의 리그’가 된지 오래입니다. 내 아이 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까는 일도 군청의 상명하달식 결정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지방의 스포츠문화센터나 노인복지회관, 공공도서관 시설 모두 적자 운영에 허덕이면서 공동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수준, 상당히 높습니다. 자발적으로 시민단체(NGO)에 참여하실 분들 많습니다. 이제는 관(官)이 아닌 민(民)에서 주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비영리 민간단체들에게 각종 지원을 하듯이, 지역 자율방범대와 같은 자발적 NGO에게 재단을 만들어주는 등의 사회적 대가를 주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청년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런 단체가 강화되면 시민들의 공공 의식도 제고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비해 지역 네트워크 시스템이 매우 취약합니다. 이렇게 지방 NGO를 육성하고 발전시켜 전국 단위의 네트워크를 결성하는 일이, 제가 구상하는 ‘큰사회(Big Society)’의 모습입니다.”
“진성 종북과 친북 정서는 신중하게 구분하는 지혜를”
- 최근 ‘통진당 사태’, ‘임수경 발언’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이 기회에 NL계와 같은 종북(從北) 세력이 제거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일부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종북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으면 진짜 종북을 못잡습니다. 다른 매체 인터뷰에서 종종 제가 임수경은 종북이 아니라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흔히 종북인지 아닌지 여부는 말로 판단하는데, 진짜 종북은 말 함부로 안합니다. 같이 운동해보지 않으면 분간하기 힘든 측면도 있습니다. 고정간첩은 종북발언 안하고, 오히려 반공발언을 할 겁니다. 따라서 진성 종북과 막연한 친북 정서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진성 종북은 숫자로 따지면 매우 적습니다. 진성 종북이 물고기라면, 친북 정서라는 물에서 놀고 있다고 할까요. 물과 물고기를 분리시켜야 하는데, 물도 다 물고기로 몰면 물고기는 더 잘 놀게 됩니다.”
- 진성 종북은 숫자로 적다고 하셨는데, 친북 반미정서 또한 걱정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80년대 운동권 정서가 대중사회에 스며들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게 된 것인데요. 반미, 생태운동, 반기업심리, 반대한민국의 현대사 시각 등 우리 사회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종북이란 말 그대로 영혼도 없이 북한을 따라하는 겁니다. 과거 운동권이 반전반핵으로 가다가 북한이 핵을 개발하니까 그것을 옹호하려고 반핵구호를 슬그머니 뺍니다. 이런 것이 종북이고 넋 빠진 행위입니다. 인터넷에서 김일성을 찬양하는 것은 대중정서 속에서 심한 알레르기 현상을 일으키겠지만, 진성종북이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진성종북은 그렇게 아마추어적인 일 안하거든요. 문익환 목사도 그런 의미에서 친북좌파 정서가 있지만, 진성종북은 아니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말년에 자신의 소신대로 북한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였지요. 임수경 발언도 그 연장선에서 보고 있습니다. 보수 일각에서처럼 북한에 갔으면 무조건 잘못이고, 진보 일각은 무조건 잘했다고 하는, 이런 식의 판단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친북정서와 진성 종북의 구분은 운동권 출신 다운 설득력있는 구분이지만, 문익환 목사에 대한 판단은 그렇게 석연치는 않았다. 한때 모셨던 분에 대한 비판적 거리가 없는 게 역시 문제일까? 아니면 그의 깊은 속을 가늠하기 힘든 것일까? 이 대목에 대한 판단은 서로가 잠시 유보해놓는 게 좋을 듯하다.)
- 다른 나라와의 FTA는 가만히 있는데, 미국과의 FTA는 유독 반대하는 ‘반미정서’도 문제 아닐까요.
“일상화되고 정치화된 반미, 즉 신앙 비슷하게 이념(ism)화된 반미주의자들은 많지 않다고 봅니다. 한미 FTA 여론조사를 해보면 찬성이 더 많다는 점에서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조직적인 반미주의자들의 선동입니다. 이러한 선동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저널리즘 교육을 제대로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입니다. 사실(fact)을 분간하고,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각과 태도를 길러야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특히 보수가 되겠지요. 조직적인 반미주의 세력에 맞설 시민단체 또는 운동가를 양성하는 데 투자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국회의원 출마에 대한 아내의 반대는 없었는지 물었다. 미래 남편 최악의 직업은 정치인이라는 설문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가 살아온 과정이 트레이닝 된 것 같습니다. 원래는 결혼하고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으로 탈북자가 늘어나는 보도를 접한 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중국을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가족이 같이 머무르기는 열악한 곳이라 결혼하고 신혼 7개월만에 독수공방을 만들고, 2년 반을 떨어져 살았습니다. 그래도 학생운동을 하면서 만났기 때문에 잘 이해해주는 편입니다.”
하태경 의원의 선택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한국사회의 상처를 상징하면서도, 자신만의 성찰과 판단을 반복하면서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어려운 길을 걸어온 그의 의정활동 4년 뒤의 평가가 벌써부터 궁금하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를 큰 그릇으로 성장하는 것은 본인의 활동 여부에 달려있지만, 실은 절반 이상이 이 사회의 의무이자 몫이라는 점이다. 더욱이 그는 우리 사회가 한 번 키워볼만한 재목은 분명하다. 직업정치인으로 막 나선 그와의 대면에서 얻은 좋은 인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