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 이후 경제리더십의 진실
- <대통령의 경제학> 이장규著
고진석 독서 컨설턴트
북한이 자랑하는 김일성의 토지개혁이 한국전쟁의 패배원인이었다라고 주장한다면 누군가는 궁금해 할 것이다. ‘아니 김일성의 토지개혁은 전쟁에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어째서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김일성이 이승만 정권에 이익이 되라는 의도로 개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당사자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이번 달 소개하는 <대통령의 경제학>(이장규 지음, 가파랑 펴냄)에는 이런 내용이 소상하게 나온다.
이승만이 농지개혁에 강한 소신을 보였던 이유는 역시 북한 토지개혁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공산당을 막으려면 농지개혁을 빨리 해야 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68P) 농지개혁! 이승만 대통령에게 농지개혁에 대한 동기부여를 준 세력은 미국이 아니라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평생 증오했던 김일성정권 이었다. "자유당 시대를 독재시대, 식민지 시대에서 해방은 됐지만 암흑시대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때 토지개혁을 했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획기적인 정책이고 역사를 바꾼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것을 해서 한국전쟁이 터졌는데도 국가독립, 안정을 지켜냈고, 국민이 하나로 뭉쳐서 체제를 지켜냈다.” (70P)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칭송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칭송한 사람은 놀랍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만약 농지개혁이 한국전쟁 전에 시행되지 않았다면 남한의 농민들은 신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민군에게 적극 협력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고 남한은 역사에서 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에서 이승만을 포함한 특정시대의 부정과 단절이 곧 ‘선’이며 진보적이라는 것은 좌파의 관념적인 오류일 뿐이다. 왜?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식민지 체제를 경험한 신생국가가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한 경우는 세계사적으로도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국민 모두가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중심엔 '대통령의 리더십'이 한 몫 했다는 것도 부정하기는 힘든 사실이다. <대통령의 경제학>.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제정책을 썼는지’와 ‘그에 따른 결과와 영향을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관찰을 통해 기술’한 책이다.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취재한 기자출신 저자의 기록은 역사에 생생한 온기를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경제 전망은 꾸불꾸불한 산길을 백미러만 보면서 운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경제 예측이 그만큼 어렵다는 비유리라. 나 역시 경제기자로서 얼마나 많은 엉터리 글을 썼고, 그릇된 주장을 폈는가를 회상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런 엉터리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점만이 어설픈 변명이다." <이장규 칼럼-경제기자의 반성문 (중앙일보 2005)>
필자가 이 책의 저자를 처음 안 것은 중앙일보 칼럼을 통해서였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반성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글쟁이는 글로써 자신을 보여준다고 한다면 위의 글은 저자를 소개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저자는 중앙일보에서 31년 간 경제기자로 활동한 바 있고, 현재 삼정 KPMG의 부회장직을 맡으며, 서강대학교에서 대통령의 경제학이란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역사의 단절은 없으며, 전임자 없는 현직도 없다
"후일 박정희 군사정권이 집권직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속성으로 만들어 발표할 수 있었던 것도 이승만 때의 시행착오를 경험한 인물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가능했던 것이다."(87P)
사실 박정희는 집권 초 이승만과 장면을 지우려 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시점부터 단절은 있을 수 없었다. 전임자 없는 현직은 없기 때문이다.
“혁명 전에 우리는 민주당 정부가 구상했다는 경제개발 계획문건을 구해보려고 무척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우리 혁명주체들의 가장 큰 약점은 경제를 모른다는 점이다. 막상 혁명을 성공시키고 나니 초조했다."
조갑제가 그의 책 <한강의 새벽>에서 밝힌 대로 집권 초기 그들은 좌불안석이었다. 박정희에게도 잃어버린 5년이 있었다. 경제대통령으로 평가 받았던 박정희도 초기에는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많이 한다. 이 책은 1차 5개년계획이 명백한 실패라고 단언한다. 경제발전을 했다는 반대주장에 대해 저자는 베트남 특수와 억지 통계덕분 이었다고 주장한다. "하늘이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로 뒤덮일 때 우리는 가난에서 벗어날 것" 이라는 각오 하에 제2차 경제개발을 시작했지만 국내외적으로 박정희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개발도상국들이 고속도로 건설이나 종합제철사업 추진은 국가원수의 기념비 건립이나 다름없다"고 했던 유진 블랙 당시 세계은행 총재의 발언이 그렇다. 이런 비아냥거림에도 2차 5개년계획은 성공한다. 이승만 장면의 실패 그리고 대통령 박정희 자신의 5년 실패의 경험까지 한국경제의 눈부신 성공의 밑바탕에는 전직과 현직 대통령의 소중한 실패의 경험이 있었다. 지도자는 하늘에서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만약 박정희가 5년만 하고 대통령을 그만두었다면 그는 실패한 군사독재로 사라졌을 것이다. 결국 길어서 문제였지만 짧았으면 더 큰 문제였을 것이 대통령 박정희의 임기였다. “결국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너무 오래 권좌에 있으면 긴장이 풀어지고 자만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박정희 대통령도 결국 예외일 순 없었던 것 같다” 남덕우의 지적처럼 자주국방을 위해 매진했던 중화학공업과 부가세도입은 박정희 정권을 몰락시키는 원인이었을 만큼 반대가 많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공업화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인색 했다. 엄청난 특혜 지원에 과잉투자 때문에 막대한 부실이 발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박정희의 강력한 추진력은 결국 5공화국 때 꽃을 피운다. 선배의 장점은 잘 계승하고 단점을 고치려 했던 대통령은 놀랍게도 전두환이었고 그 뒤에는 스승 같은 부하 김재익이 있었다. ‘히틀러 보다 더 나쁜 놈이 인플레이션’전두환은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그건 경제 과외를 받았던 덕이다. 그는 겨우 별 두 개 장군 주제에 경제공부를 했을 만큼 야심가였다. 그의 과외선생 박봉환은 철저한 안정론자였다. 박봉환의 소개로 전두환은 김재익을 만나게 되는데 고3수험생이 족집게 선생님을 만난 격이었다. 저자는 김재익을 이렇게 평한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일도 그는 알기 쉽게 설명하고 풀어내는 특출한 능력을 지녔었다."
강력한 ‘물가’안정화와 수출호조에 따른 ‘성장’은 적자였던 ‘국제수지’를 흑자로 탈바꿈시켜 한국경제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맞는다.(1987년) 대통령 전두환! 노동정책의 실패가 있었지만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역대 어느 대통령들과 견주어도 낮게 평가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전두환의 현재까지 이어지는 추잡한 악덕을 덮을 만큼의 업적이 될 수 있는지는 저자 또한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다.
"특혜와 특권 경제하에서 근로 대중은 저(低)곡가의 저임금에 시달려야 했고, 증산층의 형성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에 대한 반론이 대중경제의 핵심이었다."
<김대중 자서전>에 나오는 대목(341P)이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정반대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의 화려한 성장의 그늘에는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산업화 시대에 상대적으로 소외 받았던 노동자계층에 대한 김대중의 애정은 각별했다. 김대중의 대중경제론은 박정희와 전두환을 부정하면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전면 부정하는 것은 어려웠다는 것을 이 책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좌우를 떠나서 역사를 전면 부정할 만큼 대한민국은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적이 그러하다.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산업화를 성공시킨 배경이었음을 지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개입과 간섭을 싸잡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기업들이야말로 국제경쟁력을 쌓아온 공신으로 치켜세우면서도 다른 일방으로는 독재정권의 노예라고 폄하하는 것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344P)
IMF체제에서 김대중 정부는 자신의 이념적인 성향과 관계없이 과감한 인재등용과 신속한 정책실행으로 혼란을 조기에 극복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김대중의 국가나 기업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김대중은 IMF체제를 극복했지만 양극화는 해결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를 믿었던 노동자계층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고 이는 후임자 노무현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와 좌파 대통령의 관계를 보면 제도권 밖과 안의 차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도자는 '달콤한 공약' 대신 고통과 땀을 요구해야
“내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국민들의 고통분담과 협력 없이는 일자리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475P)이 책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사실 후반부이다. 저자는 고통분담을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들의 기대수준은 높아지고 대통령은 그 비위를 맞추기 힘든 세상이다. 내수시장은 작고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한국형 자본주의가 계속 온전하려면 무슨 수를 써도 5% 성장은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제 더 이상 독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력이 있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노무현 이명박의 두 정권 모두가 이런저런 이유로 국회와의 소통에 실패했다."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 실패에는 정치의 실패가 있었다. 정치공백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대통령이 지어야 한다. 그럼 모든 것이 대통령의 책임인가? 물론 아니다. 아직도 일차원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회의원들의 자질에도 큰 문제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울하게도 향후 10년 대한민국이 직면해야 할 현실은 3% 이하의 저성장과 과도한 복지비용 지출로 인한 경제침체이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설득능력을 가진 대통령이 국회를 설득하여 인기 없는 정책을 강행하면서 최소 5%의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 책을 보고 고통 분담 없이 복지라는 달콤한 단어만 반복하는 2012년 대통령후보들을 다시 보게 된다. 과연 이들이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넘어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