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민주주의의 상관성
윤평중(한신대, 정치철학)
1. ‘섬머힐’의 신화~ 교육은 곧 민주주의다?
닐(A.S. Neill, 1883~1973)이 1921년 런던 근교에 세운 섬머힐(Summerhill) 학교는 오늘날에도 찬란한 신화로 남아있는 현실적 실체다. “아이들을 학교에 맞추려하지 말고 학교를 아이들에게 맞추는” 민주적 대안교육과 진보적 대안학교의 상징인 섬머힐의 실험은 현대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적 시발점으로 여겨진다. 처음에는 작은 사회적 파장만을 불러 일으켰던 이 조그만 기숙학교의 이름은 1930년대 들어서면서 차츰 영국사회 전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학교생활을 둘러싼 닐의 경험담과 그의 교육관을 엮어 펴낸 『섬머힐』은 1960년대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수백만 권이 판매되며, 수많은 미국 대학들이 이 책을 교재로 채택한다.『섬머힐』이 70년대에는 독일에서, 그리고 80년대에는 일본에서까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면서 급진적인 ‘자치 자유학교’의 선구자 섬머힐은 세계적인 고유명사의 위상을 획득한다.
그간 섬머힐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현대 교육체계나 교육사상에 끼친 섬머힐의 코페르니쿠스적 영향력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한마디로 섬머힐은 ‘새로운 교육,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마음의 고향 비슷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섬머힐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닐이 섬머힐을 “진정한 민주주의에 근접”하는 공동체적 실천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섬머힐의 실험을 “우리 학교의 민주주의에 국한되지만”, 현재의 세계에서 시행되고 있는 “가짜 민주주의”와 대극되는 진짜 민주주의로 상정하고 있으며, “아테네식 모델에 근거한 민주주의로 보고 싶다”고 선언한다.
이런 닐의 자부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설립된 지 거의 1세기가 되어서 지금은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교육현실에서는 아직도 경이롭게 들리는 섬머힐의 풍경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남녀공학 기숙학교인 섬머힐에서 아이들은 학습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은 학교 운영에서 최소한의 도우미 역할에 머물 뿐 학교생활의 근본은 아이들의 자율과 자치로 진행된다. 다섯 살에서 열여섯 살짜리까지 섞여있는 아이들은 나이 별로 기숙을 하는 데, 각 연령대마다 보모 한 사람이 함께 지낸다. 중간 나이의 아이들은 석조 건물에서 잠을 자고,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아이들은 작은 오두막집들에서 잔다. 학생들은 방 검사를 받지 않으며, 아무 때든 자기가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수업은 필수가 아니라 아이들의 선택 사항이다. 아이들은 수업에 들어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된다. 원한다면 몇 년 동안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도 되며, 실제로 닐의 회고에 의하면 3년 동안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도 있었지만 그냥 내버려 둔다. 아이 스스로 수업의 필요성을 깨닫고 공부에 흥미를 가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수업 시간표는 있지만 그건 교사들을 위한 것이다. 섬머힐의 전형적 일과표는 오전은 수업시간이며, 오후는 누구에게나 완전한 자유시간으로 구성된다. 아이들은 뛰어 놀거나, 음악, 공작, 미술, 운동 등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또 다른 자치 활동시간이 주어진다. 대학을 진학하려는 학생이 섬머힐에도 있고 교직원이 그들을 도울 자세를 갖고 있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시험제도는 섬머힐에서 권장되지 않는다.
섬머힐에도 물론 공동체를 규율하는 규칙과 규정들이 있다. 그러나 규칙과 규정은, 매주 토요일 밤에 열리며 모든 교직원과 학생들이 평등하게 각자 한 표씩 행사하는 ‘전체회의’에서 토의되고 결정된다. 이런 민주적 자치제도에는 “관료주의가 없다”고 닐은 선포한다. 전체회의 때마다 매번 의장이 바뀌고 서기는 자원자가 맡는다. 학기 내내 이런 절차에 따라 의장이 선출된다. 불만사항 또는 새로운 안건이나 법을 제시할 사람은 누구나 전체회의에 상정 가능하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아이들은 ‘제소’되어 상응하는 ‘불이익’을 받지만 그것도 전체회의의 다수결 결정을 통해서다. 전체회의에서는 학문적이거나 추상적인 토론은 가능하면 회피된다.
학교생활 가운데 아이들의 자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예컨대, 누가 어떤 음식을 조리하는가는 전체회의의 안건이 아니다. 교직원 채용이나 해임도 공식 협의의 대상이 아니다. 학생들의 침실을 배정하고 학교의 재정을 관리하며 물품을 구매하는 것 등도 교장인 닐과 부인이 결정한다. 학생들에게 자치는 “그들의 공동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상황을 처리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런 인프라적 요소는 “자치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민주적 자치가 실천된다면 학생들이 진정한 행복감과 자부심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닐은 확신한다. 아이들은 “천부적으로 지혜롭고 실제적”이므로, “어른들이 일절 간섭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에게 맡겨둔다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발전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신경증에 걸린 전문가나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기능인이 아니라 행복한 거리청소부를 길러내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결국 제대로 된 교육은 일상생활 속에서 민주주의의 실천 그 자체이므로 그런 자발적 과정을 통과한 아이들이 행복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2. 민주적 대안학교와 반민주적 계급성
닐의 회고에 의하면 초창기 섬머힐에는 다른 학교에서 추방된 문제학생들이 많이 왔으며 불량·폭력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섬머힐』의 기록은 이들 문제아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치유’되어 가는 광경을 묘사한다. 놀랍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문제아동’ 뒤에는 거의 ‘문제부모’가 있다는 우리의 체험적 실감은 이 책에 의해서도 재확인된다. 그만큼 섬머힐은 늪처럼 고여 썩어가는 제도교육을 고발하는 현상타파의 사자후(獅子吼)같은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섬머힐은 학교교육 자체가 민주시민교육의 장이어야 하는 현대적 상황에서 중요한 선구자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섬머힐에 대해 제기되는 첫 번째 의문은 ‘그것이 현대대중사회에서 재현가능한가?’는 질문이다. 여기서 닐이 ‘자치와 자유의 섬머힐’을 아테네 직접 민주주의에 비유하는 것은 진정 의미심장한 일이다. 전성기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경우에도 우리는 그 체제가 성인 남자시민들만을 위한 정체(政體)였음을 알고 있다. 남자보다 많은 여성과 아이들뿐만 아니라 시민보다 훨씬 다수의 노예와 외류 거주인 들에게는 민주적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테네 민주주의 자체가 시민권을 결여한 노예를 비롯한 다수의 노동 인력들이 제공한 잉여생산력 위에서 비로소 작동 가능했다는 사실(史實)도 곱씹어보아야 한다. 이 점에서 아테네 민주주의는 소수만을 위한 일종의 엘리트 민주주의였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절정인 페리클레스의 통치조차 아테네 바깥의 그리스 도시들에게는 아테네 제국주의 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 고대 아테네를 번성케 한 사회경제적 배경과, 소수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온 섬머힐 아이들이 청소와 세탁, 조리 같은 구질구질한(?) 노역에서 면제된 채 때로는 공부조차 안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면서, ‘민주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정황 사이에는 분명 흥미로운 ‘겹침 현상’이 엄존한다. 섬머힐을 다른 사회에 이식하려는 논자들은 운명적으로 대중사회일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의 상황에 대해 정면에서 응전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없게 된 근대 이후의 상황이 바로 핵심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대대중사회는 대중교육을 동반하며, 대중사회에서는 오직 소수의 기득권자들만이 대중교육을 넘어선 ‘소수를 위한 맞춤 교육’을 자식을 위해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다수의 서민대중은 국가가 제공하는 대중교육에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려는 중상류층은 자신의 능력을 초과하는 과잉교육투자로 멍들고 있다. 총인구 수십만명을 넘지 않았던 극성기(極盛期) 고대 아테네 전체 인구보다 서울의 보통 구(區) 인구가 훨씬 많은 실정이 교육과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던지는 도전은 결코 작지 않다. 흔히 섬머힐은 루소의 교육사상을 체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루소의 민주주의론이나 교육론 자체가 아테네 보다 인구가 더 적었던 당대의 제네바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섬머힐의 실상은 그 상징적 중요성이나 명성에 비해서는 매우 왜소하며 초라하기까지 하다. 학생과 교직원 전체의 숫자가 백 명 남짓 했으며, 설립 이후 1990년대 초까지 섬머힐을 다닌 아이들의 총 누적 숫자가 600여명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섬머힐이 국제적 명성을 얻기 전에는 만성적 재정문제로 존폐의 위기에 몰려있는 상황이었으며, 유명해 진 후 참관을 희망하는 외부 방문객 숫자가 학생 수를 능가하는 날이 많았다는 기록도 참고할 만하다. 교직원과 학생들의 빈번한 교체와 전학도 오랜 숙제 가운데 하나였다. 한마디로 섬머힐의 문제는 현대 대중사회에서 재생산 가능한 일반적 모델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기존 교육제도의 계급성에 도전하는 민주적 대안학교 자체가 은폐하고 있는 계급성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모든 대안교육의 시도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섬머힐이 비판하고 극복하려 한 현대 대중의무교육에도 명암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대중의무교육이 역사상 처음으로 절대 다수의 보통시민을 ‘강제적으로’ 교육함으로써 현대 민주주의의 초석을 깔고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적 인프라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출현한 국민국가의 시민교육과 뗄 수 없이 연결된 대중의무교육은 국수주의적 애국심를 배양하고 푸코적 맥락에서 인간을 훈육시키는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과 동시에, 시민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보편적 계몽과 인적자원 개발의 차원을 포괄하면서 현대적 삶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대 대중의무교육의 혁명성은 동서를 관통한 고대 교육론이 갖는 계급적 한계를 돌아보면 더 분명해 진다. 예컨대 서양 사유에 큰 족적을 남긴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동시에 이상국가의 시민에 대한 교육론이기도 한데, 여기서 철학을 비롯한 인문교육은 오직 소수 통치계급에게만 허용된다.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문명을 지배한 공자의 교육사상도 유교적 이상국가의 추구에서 나온 것인데, 극소수의 지배계급을 위한 계급적 성격을 탈색하기는 쉽지 않다. 교양인과 문화인을 기르는 고전적 인문교육에 역사적으로 내장된 계급적 성격을 넘어서 그것을 민주다원시대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업이 되어야 마땅하다.
3. 교육(Bildung)은 노동(Arbeit)을 통한 도야(bilden)의 과정이다.
섬머힐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이 노동을 통한 도야 과정임을 소홀히 하는 데 있다. 물론 섬머힐이 규율 부과와 교과학습 위주의 주류 교육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는 데서 이해할만한 하지만, “섬머힐이 놀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교”라는 닐의 언명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을 통한 자기도야’의 차원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치명적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치유의 명목으로 수년간 수업에 들어오지 않을 권리를 학령기 아동에게 허용하는 자유가 과연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은 단순한 꼬투리 잡기가 아니라 교육의 본질에 대한 심중한 성찰에서 나오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입시의 중압감, 성적경쟁의 살인적 스트레스, 승리와 세속적 성공만을 앞세워 우정과 연대의 인간적 덕목을 파괴하는 학교, 아이들을 점수기계로 만들어 암기식 지식측량의 한 줄로 세우는 교육현장의 反교육화와 총체적 황폐화 현상에 대한 안티테제인 섬머힐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섬머힐의 아름다움이 결여하고 있는 것이 있다. 즉, 어떤 종류의 美는 놀면서 저절로 얻어지기는커녕 엄청난 인공적 단련과 노력 끝에 비로소 획득되는 귀한 자질과 소양이라는 교훈이다.
교육의 본질이 노동을 통한 자기도야에 있다고 할 때 노동의 의미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끊임없는 훈련과 땀 흘림, 하고 싶고 놀고 싶지만 참는 금욕, 스스로를 가다듬는 절제는 결코 그냥 생기지 않는다. 닐의 소박한 희망과는 달리 어린 아이들은 결코 천사가 아니다.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로 타락할 수도 있는 극단의 가능성 앞에 열려진 과정적 존재인 것이다. 어른이 개입하지 않고 아이들 하고 싶은 대로 놔둘 때 스스로 최대한의 발전을 이끌어 내리라는 기대는 피상적인 소망사고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놀기 좋아하고 땀 흘려 노력하는 것을 기피한다. 바꿔 말하면 노는 건 달콤하고 쉬우며, 노력은 쓰디 쓸 뿐 아니라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자라나는 아동의 경우 노동은 곧 공부를 뜻한다. 물론 이 때 공부는 현대 한국어에서처럼 국영수 중심의 교과 공부만으로 왜소화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功夫)라는 말 자체가 중국 무술을 총칭하는 쿵푸를 뜻하기도 하지만, 원래 의미는 땀 흘려 닦는 기예(技藝)를 지칭한다. 교육의 본질이 노동을 통한 자기도야 라는 주장과 상통하는 대목이다. 자연과 대비되는 문화의 라틴어 어원이 ‘경작하다’인 것과 비교해 음미할 가치가 있다.
‘그냥 있는 것’, 또는 ‘스스로 그러한 것’인 자연과는 달리, 뜨거운 햇볕아래 땀 흘려 씨 뿌리고 잡초를 뽑는 힘겨운 노동 끝에 비로소 얻는 것이 바로 문화이자 교양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공부, 문화, 교양이 학교나 제도교육으로 제한되지 않고 삶과 사회의 전체 국면으로 확장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섬머힐 식 진보적 자유주의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런 의미의 노동이 교육에서 차지하는 몫을 지나치게 저평가하거나 너무 안이하게 처리하는 데 있다.
노동의 이런 철학적 의미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주인과 노예」장에서 가장 탁월하게 묘파되고 있다. 절대정신이 스스로에 대한 투명한 자기이해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하는 정신현상학은, 정신의 노동인 외화(外化)와 그것의 지양없이는 아무 것도 생겨날 수 없고 일체의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헤겔의 관념론적 사유에서 불필요한 형이상학의 꺼풀을 벗겨 합리적 핵심을 이끌어내면 여기서 노동은 일상적 어법보다 훨씬 넓은, 자신과 대상계를 형성해가는 활동을 총칭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생사를 건 승인투쟁에서 살아남는 대가로 예속의 나락에 빠진 노예는 이윽고 그 상황을 반전시킨다. 노예의 예속성을 탈피하게 만든 결정적 동인은 바로 노예의 노동이다. 승리한 주인은 노동하지 않으면서 노예의 노동이 가져다 준 사물을 향유하기만 하지만, 노예는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면서 노동을 통해 자연을 가공(bearbeiten)하며, 세계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품성을 도야하고, 스스로를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노예는 노동함으로써 자연의 세계를 넘어서 역사와 문화의 세계를 형성하며, 자연적 존재 이상의 것으로서 스스로를 밀어 올리게 되는 것이다.
후에 맑스가 헤겔 철학 전체의 비밀이라고 찬탄해마지 않았던 「주인과 노예」장의 노동에 대한 서술은 교육의 철학적 의미에 대한 완정(完整)한 정리로 읽혀질 수 있다. 독일어로 교육인 Bildung은 Education 뿐만 아니라 Edification으로서의 Self-Formation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형성으로서의 교육’은 부단한 노고와 땀 흘림, 욕망의 유예, 스스로 부과하는 엄격한 절제 없이 획득불가능하다. 섬머힐 식 자유주의 진보교육은 이 점에서 심대한 약점을 갖는다. 그것은 주류 교육제도의 과잉을 혐오하면서 또 다른 정반대의 과잉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섬머힐의 사상적 아버지 루소의 선언과는 달리, 인간은 결코 자유롭게 태어나지 않았으며 자연상태는 목가적 평화상황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힘든 노동의 결정체이며, 장구한 평화는 인간적 교양과 물질적 풍요 위에서 비로소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철학적 함의는 정신과 육체, 그리고 문화와 경제적 생산의 모든 영역에서 확인 가능하다.
4.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모든 귀한 것은 드물다’
깨어있는 보통사람들의 삶속에서만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이 민주시민의 훈련장이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시대적 요구일 것이다. 섬머힐은 아이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인성을 신뢰하며, 자유를 장려함으로써 우리시대의 소명을 선취했다. 섬머힐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섬머힐의 실험은 아테네 민주주의와 자신을 견주면서도 아테네 민주주의의 행로를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흔히 아테네 민주주의의 몰락은 중우정치의 도래와 동행했다고 얘기된다. 사람들은 아테네 전성기의 진정한 민주주의와, 몰락기의 군중선동에 좌우된 가짜 민주주의를 준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다수 시민의 민의에 의존하는 여론정치일 수밖에 없고, 여론이 본성적으로 변덕스럽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사이의 경계는 우리가 희망하는 것처럼 선명한 것만은 아니다. 고통스러운 교훈이지만, 다수 시민의 뜻이 반드시 민주공동체에 유익한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현대인의 상식이자 운명이 되어버렸지만 결코 만능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생존과 진화를 위해서도 민주주의의 자기주장은 더 겸허해져야 한다. 민주정의 공백과 결여를 메우기 위한 가장 큰 역사적 도전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양쪽에서 왔다. 자유주의의 공과를 일단 논외로 하자면, 포퓰리즘으로 치닫는 민주주의를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공화정의 덕목과 제도가 긴급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아테네의 행로와 로마의 행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만약 로마 공화정이 아테네 민주주의보다 정치적으로 현명했던 한 지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군주-귀족-평민이 상호 경쟁하고 견제하는 혼합정에서 발견된다는 해석이 가능할 터이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관계에 대한 탐구는 또 하나의 논쟁적 주제일 것이다. 그러나 교육과 민주주의의 상관성에 대한 우리의 논의 안으로 그 교훈을 대입하자면, 다음과 같이 명제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교육은 민주적이어야 하지만 교육과정 전체와 교육의 목표 자체가 민주주의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교육과 민주주의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섬머힐의 실험은 이를 오해했다. 학내 민주화의 이름으로 시행된 대학 총학장 직선제와 교육감 직선제 등도, 한국현대사를 옥죈 권위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측면과 일정한 순기능을 감안해야하지만, 교육과 민주주의의 동일성이라는 오해에 너무 쉽게 편승한 바 있다.
민주교육의 구원(久遠)한 이상으로 평가받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서조차 선생과 학생은 결코 같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대화 상대자의 잠재력을 깊이 신뢰하며, 성심성의로 격려하면서 제자가 스스로 깨닫게 인도하지만 제자와 자신이 동등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아테네 시민 가운데 소크라테스 혼자만 자신이 무지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현명한 존재인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제자와 시민들에게는 없는 권위가 있다. 물론 그 권위는 관습과 전통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닦고 연마한 지혜, 용기, 절제에서 온다. 소크라테스는 노동을 통한 자기 도야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보통의 아테네 시민들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하면서 ‘철학에 최초의 범죄를 저지른’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교육의 한 본질적 측면은 민주주의의 산술적 평균화 요구에 강력히 저항한다. 노동을 통한 자기도야로서의 교육이 전형적인 경우이며, 섬머힐을 비롯한 진보적 자유주의 교육이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대목이다.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흐를 때 민주주의 자체만 침식시키는 게 아니라, 교육의 본원적 기능 하나도 덩달아 휩쓸고 갈 우려가 있다. 하지만 힘든 노동을 통한 자기 형성의 과정은 언제나, 어디서나 소중하다. 그리고 스피노자의 말처럼 ‘모든 귀한 것은 드물다.’ 한국 민주주의와 한국 교육은 드문 것을 존중할 여유를 과연 가지고 있는가?
<토론문> 교육과 민주주의의 상관성
조형곤 전북자유교육연합 대표
30년전, 전주고라는 전통 명문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중학생들의 입시 과열은 지역사회에서도 큰 이슈였다. 전주보다 4년 앞선 1975년에 전남 광주에서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자 그 이듬해부터 3~4년간은 광주에서 공부 좀 한다는 중학생들은 전주고 입학도 불사했다. 그러다가 1979년 전북 전주에도 드디어 고교평준화 정책이 도입된다. 이는 어린 중학생들의 입시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모든 고등학교의 교육환경을 똑같이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별 고등학교 입학시험은 사라졌고, 학생들은 전국단위 공통 시험을 치른 후 학군단위로 성적순에 따라 합격자가 가려진 후 소위 ‘뺑뺑이’ 추첨을 통해 고등학교에 배정받게 되었다.
한편 같은 해 즉 1979년에 수학 정석의 저자 홍성대는 전주에 상산학원을 설립하고 1980년에 학교설립인가를 마친후 1981년에 610명의 신입생을 평준화에 의해 배정 받는다. 당시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나와 친구들은 전통 명문고인 전주고나 신흥 명문고인 상산고를 선호했고 나머지 학교들은 기피했던 기억이 난다. 상산고를 좋아했던 이유는 학교 시설들이 호텔처럼 좋았고 교사들이 잘 가르친다는 소문 때문이다. 결과도 상당히 좋았다.
2002년, 상산고는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되면서 지역의 신흥 명문에서 전국적인 명문고로 발돋움했다. 홍성대 이사장은 자사고 전환후 7년간 350억원의 법정전입금을 내 놓으며 학교를 발전시켰다.(동아일보 2010년 1월 27일 A5면) 그 결과 우리나라가 아닌 세계의 명문고로 도약할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상산고의 성장 배경으로 자립형 사립고 전환을 들 수 있으며, 이는 다시 교육과정의 자율화와 전국단위의 학생선발권 그리고 학교법인의 대규모 투자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일반고와 상산고의 세출예결산액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세출 예산(결산) |
일반고(사립고) |
상산고 |
1년 예산 총액 |
72억(100%) |
75억 |
인건비(교직원) |
53억(73.2%) |
49억 |
학교관리운영비 |
7.2억(9.9%) - 학교운영비 |
8억 - 관리운영비 |
교육비 |
1.8억(2.5%) |
없음 |
시설비 |
5.4억(7.5%) |
8.6억(11.4%) |
교수학습비/연구장학비 |
2.9억(4.0%) -교수학습비 |
7.6억(10.0%) -학생장학금 |
일반운영지원비 |
1.1억((1.6%) -일반운영비 |
1.2억(1.6%) -운영지원비 |
한편 세입예산은 다음과 같다.
세입 예산(결산) |
일반고(평준화) |
상산고(비평준화) |
1년예산 총액 |
72억 |
75억 |
학생납입금 |
31.7억 |
51.2억 |
재정결함보조금(교육청지원) |
40.3억 |
1.8억 - 교육청 운영지원비 |
법인전입금 |
없음 |
21억 |
기부금 |
없음 |
2억 |
학생수 |
1,700명 |
1,100명 |
학생1인당 수업료(연간) |
179만원 |
465만원(일반고의 2.6배) |
만약 상산고가 자사고가 되지 않았다면 학생들에게 받는 연간 수업료는 179만원으로 돌아가고 교직원 인건비 명목으로 주는 재정결함보조금으로 나머지 학교 재정을 충당하게 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립고와 자립형 사립고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제 발제문에 의한 섬머힐과 상산고를 비교하는 것으로 토론을 마무리 하는 것을 어떨까 싶다.
함께 생각할 점들로
1. 상산고는 공교육인가 사교육인가?
2. 초기 상산고(2002년 이전)는 공립학교인가 사립학교인가?
3. 상산고의 학생수가 30% 감소하면 어떻게 될까? (일반사립고, 공립고는?)
4. 공교육은 민주적이고 사교육은 비민주적인가?
5. 교육과 학습 어느 것이 더 우선인가?
6. 우리나라는 교육평등의 어느 단계에 와 있는가?
(1단계 : 교육기회의 허용적 평등
2단계 : 교육기회의 보장적 평등
3단계 : 교육여건의 평등
4단계 : 교육결과의 평등
5단계 : 교육 결과값의 평등)
7. 교육자치와 지방자치, 자유민주주의의 상관성
8. 교육감 직선과 학교자율화
9. 학교선택권과 학습방법 선택권
섬머힐은 ‘교육과 민주주의가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해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고교평준화가 ‘교육기회는 물론 교육여건의 평등화’를 가져 왔다고 오해하고 있다. 되레 평준화로 인해 공교육의 실패를 가져왔고, 재력있는 사람들은 이를 사교육에서 충분히 보충하지만 가난은 대물림되고 있다.
섬머힐이 현대 대중사회에서 재생산 가능한 일반적 모델이 될 수 없는 반면 상산고는 이미 대중화되었다. 섬머힐이 도외시하는 ‘공부를 통한 도야의 과정’을 상산고는 처음부터 지향하고 있었다.
끝으로 상산고를 소제로 소설을 쓰면 얼마나 팔릴까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