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무상복지는 국가에 해가 된다.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 복지정책을 세분화해서 생각하자.
복지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용어이므로, 정치권에서는 단순하게 ‘복지확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지란 여러 가지 다른 성격의 영역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복지는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득지원을 하는 공공부조 정책으로 대표적으로 국민기초생활보호제도를 들수 있다. 둘째,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는 위험에 대해 사회적으로 대비하자는 사회보험으로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이다. 셋째, 교육, 보육, 노인 돌봄 등과 같이 기본적으로 개인이 결정해야 하는 소비영역이지만, 사회적 중요성 때문에 정부가 일부 개입하는 사회서비스이다. 정치권에서 보편적 복지, 혹은 공짜복지라는 복지상품은 ‘사회서비스’이다.
□ 보편적 무상복지가 정치권에서 나오는 이유는?
정치시장에서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다수결 원칙에 의해서이다. 특정 정책안이 통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1%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특정정책안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이념적 틀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 51% 지지를 구하기 위해서는 중간층에 있는 1%의 지지가 절대적이다. 따라서 정치시장에서는 중간에 있는 1%에 의해 정치상품의 채택여부가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경제시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재화의 배분이 결정되지만, 정치시장에서는 중간층인 1%의 결정에 의해 전체 정치시장의 자원배분이 결정된다.
정치시장의 수요자인 국민들은 경제시장에서의 수요자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경제시장에서는 수요자가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해당 상품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입하지만, 정치시장에서 수요자는 정치상품을 선택하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시장에서 만약 잘못된 선택을 했을 경우에 지게 되는 피해를 고스란히 수요자가 지기 때문에 사전에 여러 가지 대안상품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것은 합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반면 정치시장에서 수요자들은 잘못된 정치상품을 선택했다고 해도, 그 피해는 당사자에게만이 아닌 국민전체가 부담하게 된다. 정치시장에서 수요자들이 경제시장에서처럼 정치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 치뤄야 할 시간비용은 크다. 선거철마다 모든 후보가 부품한 정책공약을 제시하는 속에서 어느 후보가 가장 적합한 후보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 수요자 입장에서 보면, 투자할 경제적 논리가 적고, 잘못 선택했다고 해도, 그 부담을 모든 국민 혹은 해당 지역민들이 골고루 지므로 정치상품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 된다. 이를 정치수요자들의 ‘합리적 무관심(rational ignorance)’ 행위라고 하는데, 이는 정치시장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행동이다.
일반적으로 선거철마다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요구하지만, 정치시장의 구조상 절대 수요자들은 현명하게 투표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수요자들의 무관심을 깨우기 위한 여러 가지 홍보성 캠페인을 하지만, 교육을 통해 수요자들의 무관심을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관심한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치시장의 경쟁구조는 승자는 모든 것을 얻게 되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예를 들면, 두 명이 경쟁하는 구조에서 49%와 51%의 득표율 결과일 경우에는 비록 2%의 차이이지만, 승자는 모든 걸 독차지하고, 패자는 49%의 지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잃게 된다. 이러한 승자독식구조 하에서는 정치경쟁을 결정짓는 중위자 투표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정책은 그것이 아무리 경제적인 합리성이 없다고 해도, 추진하는 것이 정치시장에서 이길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정치 공급자 입장에서는 중위자 그룹에서 원하는 정책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치 사업이다.
합리적으로 무관심한 수요자들의 마음을 잡는 방법은 수요자들에게 혜택이 가는 정책을 제공하는 것이다. 공공부문에서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세금이란 부담으로 현실화되는 것이지만, 세금은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정책집행은 특정집단에 집중적으로 혜택이 발생한다. 모든 사람들이 부담하는 세금에 대해서는 수요자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반면, 본인에게 혜택이 오는 정책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이다. 세금은 전체 사회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집행되어야 하지만, 이는 경제적 합리성이란 측면에서 논리적일 뿐, 현실에서 일어나는 정책결과는 전체 사회의 후생극대화와는 거리가 있다. 정치인들은 전체 사회후생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특정정책이 수요자들의 좋아하기만 하면, 집행하는 공급자 입장에서는 합리적 행동이 되는 것이다. 세종시, 지역사업 등 경제적 합리성에 반하여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정책이 현실화되는 이유는 이러한 정치시장 구조에 기인한다.
경제시장에서는 공급자가 낭비적 자원배분을 하게 되면, 손실이란 결과를 통해 시장에서 퇴출되므로,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정화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정치시장에서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아무리 낭비하는 정책결정을 해도, 정치시장에서 퇴출하기는 커녕, 오히려 승자 독식할 수 있는 구조이다. 정치시장은 근본적으로 효율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으며,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시장의 구조문제이다. 이를 '정치실패(political failure)'라고 한다. 한국의 정치시장에서 현재 포플리즘 정책이 많이 양산되고, 여야할 것 없이 서로 포플리즘 정책을 만들어내는 경쟁을 하는 현상은 이러한 정치실패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 무상복지는 조세부담 인상을 의미한다.
국가가 발전하면,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의 복지가 확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사회적 위험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사회서비스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우선 사회서비스의 본질은 사적재화이므로,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교육, 보육 등과 같이 소득이 낮은 계층이 제대로 이러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그만큼 사회에 해를 끼치므로, 정부가 일정부분 개입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 그래서 현재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무상 혹은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급식도 전체 대상자의 8% 학생들에게는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정치권의 정치상품은 이러한 사회서비스의 무상대상자를 전 국민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무상 사회서비스 확대정책은 구체적인 재원조달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하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다. 복지를 확대한다고 하면서, 세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도 정치시장에서 효과적인 정책홍보 전략이다. 복지천국이라는 스웨덴 제도를 한국에 현실화시키겠다는 분홍빛 환상을 보여준다. 복지는 이상이 아니고, 현실이다. 구체적인 재원 조달 없이는 불가능하다. 스웨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현재 25%의 국민 부담율을 스웨덴 수준인 50%로 대폭 늘여야 한다. 우리 국민 모두가 현재보다 2배 높은 세금을 부담해야, 스웨덴 복지라는 환상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
□ 무상복지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사회서비스를 일반 국민들에게 확대하는 정책방향의 문제점을 세 가지 측면에서 지적한다.
첫째, 세금의 경제적 비용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사회서비스가 확대되면 세금을 늘릴 수 밖에 없다. 세금에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경제적 비용이 있다. 즉 세금이 높아지면, 경제주체들은 일한 의욕이 떨어지고, 기업은 투자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정부에 내는 세금과는 별도로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는 비용이다. 그런데, 세계경제가 개방화된 이후, 세계 각국은 세금으로 경쟁하는 세상이 되었고, 이는 세금을 낮추는 전쟁이다. 따라서 세금 낮추는 경쟁을 하는 국제환경에서 우리가 세금을 추가적으로 거두게 되면, 세금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엄청나게 커진다. 이는 결국 경제퇴보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둘째, 사회서비스 복지는 한번 확대하면,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고 해도, 절대 축소할 수 없는 비가역성이 있다. 복지는 수혜계층에게는 기득권이 되므로, 이익집단으로 형성된다. 정치인들은 이익집단에 복지혜택을 유지하도록 하고, 댓가로서 정치적 지지를 거래한다. 이는 서로에게 이익을 주므로, 자연스럽게 거래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정치구조상 절대 복지혜택을 줄일 수 없다. 국민세금은 전체 국민들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재원 배분되어야 하나, 정치구조는 비효율적 자원배분을 낳을 수밖에 없다.
셋째, 사회서비스는 사적재화이지만, 무상으로 제공되면, 그만큼 자원이 낭비될 수밖에 없다. 시장가격은 희소한 재화를 가장 값지게 사용토록 하는 메커니즘이다. 시장가격 이상으로 주관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수요자만이 재화를 구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면, 그 재화의 가치도 무상이기 때문에 수요자들은 소중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학교에서 무상우유가 버려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공짜복지는 이렇게 공짜이기 때문에 낭비적인 사용은 필연적이다.
□ 우리 현실에 맞는 복지정책을 생각하자.
지금 한국은 무상복지 확대가 없다고 해도, 현재의 복지제도로도 향후 재정적자의 문제는 심각하다. 국민연금제도는 2060년에 기금이 고갈될 전망이고, 건강보험은 작년에 이미 1.3조원의 적자를 발생하였고, 2030년에 약 50조원의 적자가 발생할 전망이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현재의 복지제도를 개혁해야 하는데, 공짜복지로 국가재정의 파탄을 앞당기려고 한다.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국가적 대사는 통일이다. 통일은 언제 올 지도 모르나, 멀지 않는 가까운 시기에 올 가능성도 높다. 독일이 통일된 후에 통일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되었고, 이 비용 중에서 절반이 복지지출이었다. 한국의 현재 빈곤비율을 10% 수준으로 잡는다면, 통일되었을 경우에 35%로 증가하게 된다. 이에 따라 복지 중에서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에 투입될 비용은 거의 천문학적 수준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소리 없이 찾아올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보편적 복지 즉 사회서비스를 확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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