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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8] 북한핵 : UN 제재와 북한의 체제붕괴 인쇄하기
이름 이호진
2013-11-27 10:18:18  |  조회 3269

북한핵 : UN 제재와 북한의 체제붕괴

이호진(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 이사, 전 외교부 대사)

오늘 우리가 토의하는 주제는 “UN과 한반도: 역사와 전망”인데, 그 중 ‘전망’이라고 하면 앞으로 한반도의 통일과정에 관련될 수 있는 UN의 역할을 생각해보자는 뜻일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 방안으로서 가장 모범답안은 아마도 남북간 교류, 협력과 대화-협상의 방식으로 평화적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라는데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엄청난 남북간 격차와 북한의 체제 속성상 과연 그게 가능할지? 저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오히려 그간의 남북대화 경험과 북한이 처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가장 개연성이 높은 통일과정은 북한체제의 붕괴로부터 시작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토론주제의 대 전제가 되는 북한체제의 붕괴 – 그에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2가지 요소에 대해 몇 말씀 드릴까 합니다. 하나는 북한의 핵개발 문제이고, 또 하나는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입니다.

북한 핵개발의 Paradox

먼저, 저는 북한의 핵개발이 자신의 체제생존을 좌우할 <트로이의 목마>라고 봅니다. 달리 말씀 드리면, 북한은 자신의 안보, 즉 체제생존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핵개발 때문에 UN 등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음으로써 결국 체제붕괴를 자초하고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이것은 북한 핵개발이 내포하는 Paradox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일찍 포기하지 않는 한, 체제붕괴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달 초 UN 안보리가 더욱 강화된 북한 제재결의를 채택했듯이, 국제사회는 북한 핵개발을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므로, 북한은 핵개발로 인해 고립만 심화될 뿐 살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 Brookings Institution의 ‘Jonathan Pollack’중국연구소장은 그의 저서 타이틀을 “No Exit: North Korea, Nuclear Weapons and International Security”라고 정했는데, 그 의미라고 저에게 얘기한 바가 있습니다.

북한 김일성은 정권수립 당시부터 핵무기 개발을 결심한 것으로 보며, 1980년대 초 영변 핵단지 건설을 시작으로 본격화 했습니다. 그 징후를 포착한 한국과 미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북한 핵무기개발 저지전략을 세우고, 북한을 다뤄 나갔습니다만, 최종 결과는 북핵저지 실패입니다. 여기서 북한이 무슨 목적으로 어떤 수를 써가며 핵개발을 계속해왔는지 그 변천을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핵개발 본격화 시기: 1980년대 초부터 원전건설 추구를 내세워 NPT에 가입하면서도 핵개발을 은밀히 추진한 시기로서 1994년 김일성 사망시까지 입니다. 그때 김일성은 IAEA 사찰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면서 남한의 비핵화 협상 요구를 받아들였는데, 그것은 당시 공산권 체제가 차례로 붕괴되는 도미노 와중에, 자신의 체제붕괴 위험을 막을 계산을 한 것 같습니다.

남북한이 1991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합의와 동시 약속한 바에 따라, 북한은 IAEA와 Safeguards협정을 체결하였고, 1992년 8차례의 사찰을 받은 결과 핵신고 불일치가 탄로나고 말았습니다. 북한은 IAEA의 특별사찰이 발동되자 이를 거부하고 1993년3월 NPT 탈퇴위협으로 맞섰는데, 이것이 ‘1차 핵위기’입니다.

핵포기 협상 시기:미국의 직접협상 제의에 따라, 핵포기를 체제생존 보장과 Trade-off하는 것을 고려했던 시기입니다. 1994년 김일성 사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은 ‘벼랑 끝’ 전술을 동원해 미국과 Agreed Framework를 합의했는데, 그 이행과정을 통해 일단 시간을 벌면서 미국으로부터 안보와 체제유지 보장 즉, 관계정상화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그 대신 핵포기를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KEDO의 경수로 제공까지 갈 길이 멀고, 평양에 미국 연락대표부 설치마저도 체제붕괴의 단초가 될 것을 우려한 김정일은 도중에 핵개발 고수로 선회했습니다. 비밀리에 시작한 우라늄 농축은 비핵화 위반이라는 점에서, 2002년10월 Agreed Framework가 깨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김정일은 미국의 리버럴 클린턴 행정부가 마련해준 기회, 진보성향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마련해준 절호의 생존기회를 마다하고 거꾸로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핵개발 고수결정 시기: 밖으로 핵포기를 공약하면서도 속으로는 핵개발을 고수한 시기로서, 2003년 시작된 6자회담 과정 내내 그랬습니다. 중국이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처음 개입하게 되자, 김정일은 얼마간 핵개발 포기와 체제생존을 저울질 했습니다만, 원래부터 중국을 싫어했던 김정일은 결국 핵개발을 고수하고 버티는 전략으로 나갔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행된 6자회담은 현재 중단된 상태인데, 그간 6자회담이 거둔 성과가 있다고 한다면, 북한을 다자 Framework에서 다루면서 의장국인 중국이 (뒤늦기는 했지만) 북한이 자산이 아니고 전략적 부담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다음 말씀 드리려고 하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책변화로 연결되었다고 봅니다.

중국의 대북 입장 변화

북한 체제생존에 생명줄(Lifeline)이라 할 만큼 Leverage를 갖고 있는 중국의 대북 입장변화를 살펴 보겠습니다.

중국은 1970년대 중반부터 덩샤오핑의 개방/개혁 노선에 따라 실용주의 대외정책을 실행하고 있으나, 오직 북한에 대해서만 혈맹관계니, 순치관계니 이념적 성향으로 기울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1992년 한-중수교 후 상당기간 중국은 Two Korea Policy,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유지하면서도 안보의 핵심이익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체제유지를 음양으로 지원해 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2003년 6자회담 의장국을 맡아 북핵문제에 본격 관여하면서부터, 북한의 핵개발이 칼날의 양면처럼 중국의 안보전략에도 큰 위협요소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수년간 동아시아 전체의 정세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도 중국은 대북관계 ‘Status-Quo’를 재검토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6자회담 내내 중국은 북한에게 핵포기와 중국식 개혁을 권유해 왔는데, 이를 거부한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 타격을 받은 후, 김정은을 서둘러 후계자로 정했을 때, 중국은 북한체제가 계속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다만, 2010년 연이어 발생한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놓고, 갑작스럽게 대응책을 세우지 못한 후진타오 주석은 일단 북한을 옹호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당시 중국의 무책임한 태도는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심지어 외교가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는데, 제가 워싱턴 Brookings와 CSIS에 있을 당시 만난 중국 정부관리, 학자들도 뭔가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환구시보가 2월 초 사설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 감행 시, 대북 원조를 감축해야 한다거나 중국의 전략 이해관계는 대북관계보다 앞선다는 주장을 편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러 정보소스를 종합해 보건대, 중국이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한, 결정적 Turning Point는 지난 2월 3차 핵실험입니다.

금년 들어 2차례 UN안보리가 더욱 강화된 북한제재 결의를 채택했을 때, 중국은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고, 또한 일반 중국인들 사이에 반북 시위와 대북지원 중단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중국정부가 이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특히 북한의 거침없는 도발적 행동이 한-미 양국의 군사력 증강을 초래하는 것을 우려하는 중국은, 더구나 시진핑 지도부가 새로 출범하는 시기인 만큼 분명히 대북입장을 전환하고 있다고 봅니다.

-미 양국 정상차원에서도 중국의 대북한 자세와 입장의 변화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2.14. 이명박 전 대통령은 동아일보와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중국 국민의 생각도 바뀌어가고 있다. 시진핑 총서기는 이런 국민의 생각이 좀더 반영되는 쪽으로 갈 거다”라고 밝혔습니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3.13. ABC방송 대담 프로에서 “중국은 북한 정권의 붕괴와 파급효과를 우려해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계속 참아 왔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이미 시진핑 정부는 원유공급 중단 등 UN결의에 따른 대북제재를 적극 이행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며, 조만간 북한의 핵개발 포기 조짐이 보이지 않는 한 중국은 북한을 더욱 압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체제 속성상 핵개발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Jonathan Pollack이 얘기한 대로 “북한에게 출로가 없다 – No Exit” 그대로 입니다. 체제가 붕괴되는 길로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북한 체제 붕괴와 대응 시나리오

마지막으로 북한의 체제붕괴 시, 대응 시나리오와 관련하여 한두 말씀만 더 드리고 끝내겠습니다.

북한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고, 점진적 개방과 개혁 또는 Muddling-through 등의 단계를 거쳐 Soft-landing 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또한 절대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득세하였는데, 다분히 국내정치적 목적에서 부풀려진 측면이 강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북한이 크게 봐서 3번 체제붕괴 위기에 직면했는데, 2번은 살아 남았고 세 번째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이러니컬한 얘기지만, 한반도 분단상태 하에서 남한의 존재 때문에 오히려 북한이 살아남았다 – 남한이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위기: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나고 공산권 국가들의 체제붕괴가 계속되었을 때 북한은 살아 남았습니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면, 공산권 연쇄 붕괴에다가 1991년 걸프전에서 가공할만한 미국 군사력을 보고 놀란 김일성은 대남 평화공세로 나왔고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합의를 위한 합의의 양산’ 등 <시간벌기>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두 번째 위기: 1994년 갑작스런 김일성 사망으로 위기에 처한 김정일은 우리를 제치고 미국과 직접협상을 벌리면서 시간을 벌었습니다. 1995년 최악의 수해를 입어 경제난과 체제붕괴의 결정타를 입고도 Agreed Framework의 우산 아래 국제사회의 인도적, 경제적 원조를 받으면서 살아남았습니다.

세 번째 위기: 2011. 12월 김정일의 사망과 어린 나이 김정은의 권력세습입니다. 현재 김정은 체제가 출범 1년 몇 개월이 막 지나고 있습니다만, 어린 나이에 경험도 없는 Infant Terrible 김정은이 과연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매우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아직도 김정은은 세습 받은 독재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미사일과 핵개발 등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의존해 오던 중국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 북한은 한마디로 붕괴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는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북한은 코너에 몰렸을 때 늘 남북정상회담의 애드벌룬을 띄웠고 우리 역대 대통령이 다 말려 들어갔습니다.

노태우 대통령도 1991~92년 상황에서 김일성과 정상회담을 생각했고, 김영삼 대통령도 ‘1차 핵위기’가 한창 고조된 상황에서도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1994년7월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되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과 가진 남북정상회담이 과연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 아니면 통일을 위해 무슨 기여를 했는지 곰곰이 따져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맺는 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북한이 기습도발을 감히 생각하지 못하도록 충분한 억지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억지가 실패할 경우에는 즉각 응징할 수 있는 군사 대응태세를 갖추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와 함께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북한체제의 붕괴에 대비해야 합니다.

북한의 체제붕괴 과정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 서서히 올지, 갑자기 올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양태의 혼란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여하간에 <북한 체제붕괴>라는 시나리오를 가정할 때, 가장 바람직한 대응은 한국이 단독으로 북한에 진주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한반도 통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헌법과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UN결의 에 따라 향유하는 정통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 다음 한-미연합군이 진주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한미연합사(CFC)의 ‘작계-5029’가 계속 발전되어 왔는데, 2015년 CFC가 해체되면 어떻게 될지 확실치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향배가 중요합니다. 북한 체제붕괴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때, 북한에 가장 이웃한 중국이 가만히 수수방관할지 어떤 대응으로 나올지 아직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동아일보 회견내용 중에 중국관련 부분이 있어 인용해 보겠습니다.

“한국이 주도하는 평화통일이 중국의 이해에 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 통일 후 미군기지가 북한으로 올라간다든가 거기에 주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 미-중 간 이해가 상충될 때에는 한국이 평화 유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한-중) 정상 간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미 양국정부는 중국과 양자 전략대화를 갖고 있는데, 한-미-중 3국간 전략대화를 적극 추진해야 합니다. 외교력을 잘 발휘하면, 북한의 체제붕괴에 대응하는 한-미-중 3국의 공동전략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우리의 목표가 실현되지 못할 때입니다. 중국이 독자적 전략을 갖고 한반도의 장래문제에 개입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갖고 나와야 할 것인가? 중국의 북한관련 입장의 가변성을 감안하고, 한반도 주변국들 사이에 상충하는 전략적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한국의 한반도 단일국가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 방안이 어쩌면 보다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UN을 끌어들여보자는 것이 오늘의 토론이라는 점을 말씀 드리면서 저의 기조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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