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버큰헤드(Birkenhead)호(號)의 교훈
이철영 <(재)굿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전 경희대 객원교수>
영국인들이 긍지를 가지고 지키고 있는 전통 중 “버큰헤드호를 기억하자!(Remember the Birkenhead!)”라는 말이 있다. 그 기원은 1852년 2월 영국육군과 승조원(乘組員)인 해군 등 472명과 가족 162명이 탑승한 영국해군 수송함 ‘버큰헤드호(HMS Birkenhead)’가 침몰한 사고로부터 비롯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인근 바다에서 암초에 부딪혀 침몰할 당시 ‘버큰헤드호’에는 60인승 구명보트 3대가 탑재되어 있었다. 먼저 보트를 타겠다고 탑승자들이 몰려들 것을 우려한 영국 제74보병연대 지휘관 알렉산더 세튼 중령(Alexander Seton)은 병사들을 갑판에 불러 세운 후 "Women and children first!”(어린이와 여자부터 탈출시키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세튼 중령의 지휘 아래 갑판에 도열한 장병들은 가족들을 태운 구명보트를 향해 거수경례를 한 채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이 스토리는 시인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시(“Soldier an' sailor too!”)와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의 '자조론(自助論)' 등에 소개되어 널리 알려졌다. 이 감동적인 스토리에 대한 과장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때부터 영국 사람들은 큰 재난에 처하면 서로 '버큰헤드호를 기억하자'라는 말을 나누게 되었고, 위기 때 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버큰헤드 정신'이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타이타닉호 사고와 세월호 사고
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호(RMS Titanic)’ 침몰사고 때도 사람들은 ‘버큰헤드 정신’을 지켰다. ‘타이타닉호’는 승객과 승무원 총 2,208명을 태우고 뉴욕까지 최단시간 항해기록을 세우기 위해 빙산이 즐비한 위험한 항로를 최고속도로 항해하다가 빙산과 충돌한 후 2시간 40분만에 침몰했다. 아비규환의 상황에서도 선장과 승무원은 “Be British, (my men)! (영국인다워라!)”를 외치며 ‘버큰헤드 정신’을 지켰고, 스미스(Edward John Smith) 선장은 탈출명령을 내린 후 구명정 하강작업을 지휘하며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 항해사 3명과 기관사, 화부(火夫), 기울어가는 갑판에서 연주를 계속하던 악사(樂士) 8명 등 모두 생사의 기로에서 '승객이 모두 탈출할 때까지 배를 지킨다'는 선원의 명예를 지켰다.
정확하게 102년 뒤인 2014년 4월 16일 아침 진도 앞바다에서 우리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900명 이상이 탑승할 수 있는 6,800여 톤급 여객선이 다른 배나 암초와 충돌한 것도 아니고 혼자 급선회하다가 뒤집어졌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고일 뿐 아니라, 사고 후 선장과 승무원의 망동은 할 말을 잊게 한다. 각국 외신들은 ‘타이타닉호’ 사고와 ‘세월호’ 사고를 비교하며 승객들을 배에 남겨두고 탈출한 선장을 '선원의 치욕', '세월호의 악마(Evil of the Sewol)'라며 '선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전통을 파괴했다고 맹비난했다.
사고 시간, 위치, 수온 등 모든 조건을 따져봐도 ‘세월호’ 사고의 경우는 승객 전원 또는 대부분이 생존했어야 마땅하다. ‘타이타닉호’가 칠흑 같은 밤에 해안에서 640km 떨어진 수심 3,800m의 망망대해에서 사고를 당한데 비해, ‘세월호’는 오전 8시 45분경에 육지에서 불과 3km 떨어진 수심 37m의 해안에서 사고를 당했다. ‘타이타닉호’ 사고지점 수온은 성인이 10분 내로 목숨을 잃는 영하 2도였지만, ‘세월호’의 경우는 성인이 몇 시간은 버틸 수 있는 영상 11도였다.
‘타이타닉호’ 사고 때는 최악의 조건에서 배가 침몰한 후 1시간30분 뒤에 구조선이 도착했으나 승객 700여 명이 구조되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때는 배가 아직 떠 있던 사고 55분만에 구조선과 헬기 등이 도착했고 100여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첨단구조장비들이 있었음에도 결국 엄청난 인명피해를 남겼다. 외신들은 그 이유를 “타이타닉호엔 자기 목숨보다 임무와 명예를 먼저 생각한 선장과 선원이 있었고, 세월호는 그 반대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 해군사관학교에 걸린 깃발 ‘배를 포기하지 말라’
미국 해군사관학교 Bancroft Hall 벽면에는 ‘Don't give up the ship’(배를 포기하지 말라)라는 푸른색 깃발이 걸려있다. 이 학교의 교육정신이자 해군의 군인정신을 상징하는 글귀이다. 이 글귀는 1813년 미국 보스턴 항에서 영국해군의 ‘섀넌(HMS Shannon)함’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미국해군의 ‘체서피크(USS Chesapeake)함’의 로렌스(James Lawrence) 함장이 치명상을 입고 부하들에게 마지막으로 내린 “배를 포기하지 마라. 침몰할 때까지 싸워라(Don’t give up the ship. Fight her till she sinks.)”라는 명령에 유래한다.
로렌스 함장의 최후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당시 ‘체서피크함’ 병사들은 영국군에게 ‘체서피크함’을 내주고 항복했으며, 로렌스 함장은 사흘 후 사망했다. 당시 ‘체서피크함’의 패전과 로렌스 함장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미해군 페리(Oliver Hazard Perry) 사령관은 자신의 전함을 ‘로렌스(USS Lawrence)함’으로 명명하고 푸른색 깃발에 흰색으로 ‘DON’T GIVE UP THE SHIP’ 이란 문구를 수놓아 새겼다. 당시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이 문구는 현재까지 미해군의 슬로건으로 남아 있다.
영국군에 넘어간 ‘체서피크함’은 1815년까지 영국군의 ‘HMS Chesapeake함’으로 사용되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1819년에 매각되어 해체된 후 공장 건설 자재로 쓰였다. 병사들이 함장의 명령을 어기고 배를 포기한 대가를 치른 셈이다. 이에 비해,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함대와의 격전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던 ‘돈스코이(DmitriDonskoi)함’은 일본함대와의 전투에서 불리해지자 항복 대신 자침(自沈)을 택함으로써 러시아 군대의 자존심을 지키고 배가 일본군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이 ‘돈스코이함’은 현재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다.
정말 우리는 ‘미개’한 것이 맞지 않을까?
‘세월호’ 침몰 후 필사적 구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생존자도 구조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게 대통령이나 해양수산부 장관의 책임이고 해경을 비롯한 구조대원들의 책임이라 할 수 있는가? 선박의 불법개조, 평형수 규정과 화물결박 원칙 무시, 항해술 미숙 등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고, 승객들을 침몰하는 선박의 선실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자신들만 탈출한 선장과 선박직 승무원들의 만행이 대형 인명피해를 초래한 것 아닌가? 이것을 정부나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한다면 이 나라에서 대통령 책임이 아닌 일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사고에는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다. “침몰할 수 없는 배”라 불리며 대영제국의 자부심이었던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인간의 오만과 방심으로 1,500여명이 사망한 해운역사상 ‘최악의 재앙’이었다. ‘세월호’ 사고는 민간해운회사의 안전불감증 외에 불법과 부도덕한 경영으로 초래된 사고로, 사고의 원인에서 결과까지 모든 책임은 청해진해운에 있다. 물론 감독기관의 책임도 면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권이나 언론은 줄곧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정부와 대통령에게 몰아붙여왔다. 선박이 완전히 뒤집혀 생존자를 기대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무책임한 언론은 ‘에어포켓’이라는 그럴싸한 가설로 생존의 기대를 부추기며 침몰승객의 사망이 마치 대통령과 구조기관의 책임인양 몰아세웠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와 좌익단체들의 선동 속에 가해자인 청해진해운은 사고수습에 뒷전이고 배후 실세로 알려진 유병언 회장과 그 일가는 법을 우롱하며 잠적한 채 ‘구원파’ 신도들을 앞세워 “종교탄압” 운운하며 적반하장이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대통령의 책임을 따지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왈가왈부하기 전에 우선 청해진해운이 보상협상에 발 벗고 나서도록 압박하는 것이 순리 아닌가?
나쁜 사고에 이은 더 나쁜 세월호 특별법 논란
“세월호 특별법” 처리 등을 위한 7월 임시국회가 21일부터 한 달 일정으로 시작됐다. ‘세월호’ 사고 피해자나 그 가족들은 따뜻한 위로와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정당성과 형평성이 있는 방안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뜨겁다. “세월호 특별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고진상규명을 통한 안전사회 만들기”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야당이 발의한 법안은 사망자 전원 의사자 지정이나 국가차원의 유가족 평생지원 등 피해자 추념과 피해자 가족에 대한 보상, 지원, 혜택이 주요 골자로 포함되어 있다. 우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외치는 야당이나 이에 끌려가는 여당이 과연 법이 미흡해서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믿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간 일부 시민단체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왔고, 청와대로 몰려갔던 피해자 유족들은 청해진해운으로 달려가 시위를 벌이는 대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뒤이어 노동•종교•시민•사회단체들이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일부 야당여성의원들까지 단식농성에 가세했다. 이런 식으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다른 대형사고 희생자 유족이나 수많은 국가유공자 유족 등과의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하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목청을 높이는 야당과 좌익시민단체들이나 여론의 눈치를 살펴가며 끌려가고 있는 여당의 거취를 주시하고 있다.
‘버큰헤드호’의 교훈을 다시 묻는다
‘세월호’ 사고 이후 우리 사회의 각가지 모습들을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미개’라는 표현조차도 과분한 자들이 우리 주위에 널려있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의 만행은 말할 것도 없고, 총리에게 폭언과 물병 세례를 하고 쌍소리를 해대며 공무원의 뺨을 때리던 사람들도 할말을 잊게 한다. 희생자 빈소에 보낸 대통령의 조화를 치워버린 자들이나, 참담한 상황에서 장난 문자메시지나 스미싱 메시지를 띄운 광기 어린 인간들이나, 실종자가족 구호품을 차떼기로 훔쳐가던 자들이 우리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유족들께선 단식만은 멈춰주십시오”라는 피켓을 들고 단식농성을 벌이는 일부 야당여성의원들의 모습은 어떤가?
세월호 사고는 법의 미비 탓이 아니라 도덕성 타락과 직업의식과 책임의식 실종의 결과이다. 사고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지원 문제는 가해자인 청해진해운이 감당할 몫이다. 정치권은 국가예산과 국민의 세금으로 감당해야 할 “특별법”을 논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어떤 재앙과 비극이 초래되는 지를 전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대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버큰헤드 정신’, ‘타이타닉호’ 선장과 승무원의 책임감, 러시아 함대 ‘돈스코이함’의 자침(自沈)과 같은 숭고한 정신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